6월의 독립운동가 김원식(金元植)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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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평강·인제 일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


국가보훈처는 광복회·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08년 6월 26일, 강원도 금성(현 철원)에서 강원도 의병장으로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신 김원식 선생의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6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김원식 선생의 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1907년 7월 이후에 강원도 북부에서 군사를 모아 활동을 전개한 강원도 의병장으로 친일파들을 척결하고, 우리나라의 자주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반일활동을 전개한 순국선열이다.


1904년 2월 러일전쟁 이후 일제는 한국에 대한 침략정책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905년 11월의 을사늑약과 1907년 7월의 정미조약-군대해산을 통해 한국의 국권을 탈취하였다. 이러한 민족적·국가적 위기상황 속에서 전국 각지에서 애국지사들이 분연히 일어나 치열하게 항일활동을 펼쳤다.


이들 항일의병들은 1907년 9~10월 2달간 춘천관찰부를 포위하고 거센 공격을 펼쳤을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강원도의 의병 피해자가 전국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활발하게 의병활동을 벌였다.


선생은 강원도 북부의 험준한 산악지형을 활용하여 주로 야간과 새벽에 기습전을 펼침으로써 일제에게 타격을 가했다. 또 충청도 제천에서 일어나 강원 북부의 금강산지역까지 북상한 이강년 의병과 선생의 부대가 합세하여 연합 군사활동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선생은 화승총과 서양총으로 무장한 20여명의 소부대를 거느리고 일본군수비대를 상대로 전투를 벌였다.


이로 말미암아 선생은 일제로부터 주목 받는 인물이 되었다. 당시 선생의 부대는 인근의 일본군수비대를 공격하고, 헌병주재소를 파괴하고, 전신선을 절단하고, 세금을 탈취하고, 군수물자를 빼앗고, 친일 관리와 부호를 처단함으로써 일제의 한국지배에 강력히 저항했다.


의병운동이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가운데 강원 북부에서만 소규모 부대의 활동이 더욱 강해지자 일제는 대대적인 의병토벌작전에 돌입하였다. 강원 북부 각 군에 주둔 중인 수비대로 하여금 의병을 진압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일본군수비대는 인근의 의병들에 대한 일제 소탕령에 벌였다. 이러한 토벌작전의 여파로, 김원식 의병장은 1908년 6월 26일 강원도 금성군 동쪽의 과반리(過半里)에서 일본군 금성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장렬하게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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