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 기술 유용은 반드시 엄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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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일닷컴】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중공업에 대해 하도급 업체의 기술자료를 유용한 혐의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억4600만원 부과라는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고 1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선주(船主) P사로부터 대형 선박에 설치할 선박용 조명기구를 B사에게서 납품받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B사는 조명기구를 납품한 실적이 없는 신규 업체였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은 고객인 선주 P사의 특정 납품업체 지정 요구에 부응해 지난 2017년 4월부터 2018년 4월까지 30년 이상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하고 있던 A사의 제작도면을 B사에 전달했다.

선박은 엔진의 진동, 외부 충격, 해수와 같은 혹독한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해 선박용 조명기구는 폭발을 막기 위한 구조, 높은 조도, 우수한 전기적 안정성 등 일반 가정용 조명기구보다 훨씬 월등한 기술이 요구된다. 그동안 국내에서 선박용 조명기구 납품 업체로 A사가 유일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기술적 난이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현대중공업은 A사의 제작도면을 B사에 전달해 선박용 조명기구를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중공업은 선주의 요청에 따라 B사를 하도급 업체로 지정하기 위한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공정위는 선주의 요청이 있었다고 하도급 업체 기술자료 유용 행위가 위법하다는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B사가 선박용 조명기구를 납품할 수 있게 됨에 따라 단가인하율도 높아졌다. 단가를 후려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현대중공업은 80개 하도급 업체들에게 293건의 기술자료를 요구하면서 법에 따라 교부해야 하는 기술요구서면조차 교부하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대기업의 하도급 업체 기술 유용 문제는 고질적인 문제다. 이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한 누가 애써 기술개발에 투자하려 하겠는가. 현대중공업은 지난 7월에도 하도급 업체에 대한 기술자료 유용으로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9억7000만원을 부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불과 3개월여만에 같은 내용으로 또다시 공정위 제재를 받은 것이다. 더군다나 이 하도급 업체는 2019년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중소기업벤처부가 ‘소재·부품·장비 강소기업 100’ 에 선정된 기업이었다.

공정위는 업계 스스로 기술자료 유용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고 자율적으로 기술자료 유출·유용을 방지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도록 지속적 감시와 제재를 강화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하도급 업체 기술 유용이 결국 제살 깎아먹기라는 점을 대기업들이 인식하기 전에는 이러한 적폐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번 걸리면 얻은 이익에 비해 토해 내는 비용이 훨씬 더 커지지 않는 한 이러한 행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정부가 보다 강력한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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