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의 독립운동가 윤동주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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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관장 김삼웅)은 국가보훈처, 광복회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윤동주(尹東柱) 선생을 2007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그 공적을 기리는 전시회를 다음과 같이 개최한다.

ㅇ 기간 : 2007. 12. 1 ~ 12. 31.
ㅇ 장소 : 근대민족운동관(제2전시관) 내
ㅇ 내용 : 선생이 직접 쓴 「서시」원고 등 사진자료 22여점

윤동주 선생은 1917년 12월 30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화룽현(和龍縣) 명동촌(明洞村)에서 아버지 윤영석(尹永錫)과 어머니 김용(金龍)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당시 북간도의 대표적인 한인마을인 명동촌에서 일찍부터 기독교 정신과 항일민족의식을 익힌 선생은 더욱이 간민회 회장을 역임한 외삼촌 김약연(金躍淵)의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킬수 있었다.

선생은 1925년에 당시 북간도의 대표적인 민족학교인 명동소학교에 입학하고, 1932년 4월 은진중학에 진학하여 역사의식과 항일독립의지를 고취시켰다. 1935년에 평양 숭실학교로 편입한 선생은 1936년 1월에 숭실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일제에 의해 무기한 휴교되기까지 약 7개월간 활발하게 시를 창작하였다. 1938년 2월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할 당시 참담한 민족의 현실을 목도한 선생은 지식인으로서 고뇌와 갈등을 느끼고 1년 이상 절필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조선어 와 역사 강의를 들으며 민족문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선생만의 독창적인 시세계를 구축하였다. 선생은졸업을 앞둔 1941년 11월에 작품 18편을 고르고 「서시」를 붙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집은 결국 선생이 순국하고 3년이 지난 1948년이 되어서야 간행

될 수 있었다. 선생은 1942년 3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릿쿄(立敎)대학에 입학하고 다시 10월에 쿄토(京都)의 도지사(同志社) 대학으로 전학하였다. 동갑내기 고종사촌인 송몽규(宋夢奎)를 비롯하여 조선인 유학생과 함께 우리문화를 지키고 민족의식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선생은 1943년 7월 이른바 ‘재쿄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사건’으로 피체되었다. 이에 1944년 3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곳에서 선생이 생체실험의 대상으로 희생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가운데, 선생은 결국 1945년 2월 16일 옥중 순국하였다.

이에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 8월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독립기념관에서는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자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고 관련 사진자료를 12월 한달동안 전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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