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자율화 시대 사실상 종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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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와 여당이 1.11 부동산 대책을 또 내놓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공급 확대와 거래 활성화라는 핵심은 외면했으니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고위 당정 정책조정회의에서 확정한 ‘부동산시장 안정을 위한 제도 개편 방안’에 따르면 현재 공공 부문에만 적용하고 있는 분양원가 공개가 오는 9월부터 수도권 전역과 지방 투기과열지구의 민간 택지로 확대된다. 말이 지방이지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울산 등 5대 광역시에 충북 청주시·청원군, 충남 천안시·아산시·공주시·연기군·계룡시, 경남 창원시·양산시 등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돼 있으니 1999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분양가 자율화 시대가 사실상 종막을 고하는 셈이다.

당정은 또 민간 택지의 분양가 상한제는 당초 방침대로 9월부터 시행하고 공공 택지만 해당되는 채권입찰제가 재개발, 재건축, 주상복합 등 민간 택지로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밖에 ▲토지임대부 및 환매조건부 분양 시범 실시 ▲채권매입 상한액 하향 조정 ▲분양주택 전매 제한 기간 확대 ▲청약가점제 조기 시행 ▲후분양제도 도입 시기 2008년으로 순연 ▲투기지역 기존 주택담보대출 2건에서 1건으로 축소 ▲토지에 의한 토지보상금 지급 기준 신설 ▲이사철 대비 수도권 전.월세 안정대책 마련 ▲영세민 등에 대한 저리 전세자금 지원 확대 등도 대책에 포함됐다. 생각할 수 있는 대책은 모조리 동원한 그야말로 백화점식 처방이다.

한때 주택공급규칙이 너무 자주 바뀌어 담당 공무원도 헷갈린다고 했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후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굵직굵직한 부동산 대책만 해도 벌써 아홉 번째이고 자잘한 것까지 합하면 40여 번을 헤아리니 일반 서민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게 돼 버렸다.

하지만 그러고도 집값 안정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원가공개를 강행하면 단기적으로 분양가를 10% 정도 인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지만 그 대가는 결코 작지 않다.

주택이라는 재화를 반시장적인 틀 안에 가두려면 기업의 창의는 포기해야 한다.

주택건설업체들은 한낱 품팔이꾼으로 전락하고 주택 품질의 다양성을 원하는 시장의 수요를 충족할 수 없다는 얘기다.

분양시장의 과열도 우려된다. 신규 주택은 전체 주택시장의 3~4%에 불과한데 분양가를 억지로 낮추면 너도 나도 덤벼들 게 뻔하다. 그래서 분양 과열을 막으려고 채권입찰제와 전매 제한 등의 규제책을 또 들고나왔지만 짜깁기식 임시미봉책이라는 점에서는 이전의 대책들과 오십 보 백 보다.

부동산을 규제만으로 잡으려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이는 참여정부의 거듭된 부동산정책 실패로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그런데도 이번 대책은 여전히 규제 일변도에서 맴돌고 있어 여간 실망스럽지 않다. 분양가 상한제도 그렇다.

업계의 무분별한 고분양가 경쟁에 재갈을 물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5공 시절의 분양가 상한제 5년으로 인해 공급 부족에 따른 집값 급등이라는 호된 대가를 치렀고 그 여파로 노태우 정부의 ‘주택 200만 호 건설’이 불가피해지면서 부실 시공과 인건비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등 엄청난 부작용을 낳았던 전례를 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는 더 이상 부동산에 헛심을 써서는 안 된다. 일부 시장 실패에 대해서는 정부의 간여가 용인될 수도 있지만 시장 자체를 부인하려는 오만은 금물이다.

지금이라도 공급 확대와 거래 활성화를 통해 시장이 정상으로 돌아갈 길을 터 주는 게 또 다른 실패를 막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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