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을 넘어 국제영화제까지 비상하는 영화 ‘봉천9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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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들의 거침없는 질주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로 장애인들이 직접 영화를 찍고 시사회를 가졌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바 ‘봉천9동’에 위치한 장애인센터 ‘함께 사는 세상이 마침내 일(?)을 낸 것이다.

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지적(知的)장애인(구, 정신지체 장애인)이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했다. 영화 촬영 이후 시사회까지 마쳤지만, 영화 한 편을 직접 만들었다는 자신감은 사그라질 줄 모르고 여전하다.

영화 ‘봉천9동’의 촬영은 지적 장애인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 시작됐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지적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영화에 투입될 배역을 30명의 장애인들이 직접 투표로 결정했다. 30명 모두가 영화 촬영이 낯설고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촬영 전 시나리오 작업부터 장애인들 스스로 시작했다. 대본은 장애인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한 데 모아 완성했다. 자신들의 이야기로 대본이 완성되자 영화 촬영에 대한 열의가 한층 더해졌다는 후담이다. 제목도 ‘날아라 오뚝이’ 등 여러 개를 거쳐 최종적으로 ‘봉천9동’이 선정됐다.

교육을 목적으로 한 영화 촬영은 대성공. 감독과 카메라, 주연 배우 등 역할 결정은 물론 시나리오 대본까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현장 경험이 있는 영화감독과 연기지도자의 조력에 참여 장애인들의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 비로소 최초의 장애인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영화 촬영을 하면서 막상 어려웠던 점은 날씨였다. 낮에만 촬영이 가능한 데다 날씨가 지나치게 덥거나 흐릴 때는 장애인들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져 간질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장애인들은 영화 촬영을 통해서 평소 하고 싶던 것을 마음껏 해볼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촬영지를 야구장으로 정했다가 시즌이 끝나 농구장으로 이동하는 해프닝도 그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농구장에서 촬영한 장면에서는 엑스트라도 상당수 필요해 더 많은 장애인들이 농구장을 방문하는 횡재(?)도 누렸다.

영화 촬영 도중 주인공이 머리를 깎아서 모자를 쓰고 출연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지만, 술집 장면 촬영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술을 못 마시는 장애인들이라 보리차에 거품을 내서 맥주를 대신했는데,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 만으로도 커다란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촬영 전반을 진행하고 장애인들을 보조했던 서성민 장애인센터 교육팀장 역시 이 때를 가장 흐뭇했던 순간이라고 말했다.

‘함께 사는 세상’ 교육센터 서성민 팀장은 영화 제작을 하면서 ‘과연 이 것을 우리 친구들이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지만, 막상 크랭크인 되자 친구들이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고, 자신감과 표현력도 몰라보게 향상돼 기뻤다고 전했다. 또, 서 팀장은 촬영 초기에는 장면 단위로 진행되는 영화 제작 특성상 상황에 맞는 감정 전환이 어려웠지만, 이 역시 촬영이 진행되면서 점차 나아졌다고 평가한다.

시사회는 장애인센터 ‘함께 사는 세상’ 식구들과 장애인 가족 등 가까운 분들과 여러 명이 참석해 성황리에 이뤄졌다. 메이킹 필름으로 치른 시사회였지만 ‘해냈다’는 뿌듯함은 여느 시사회장 못지 않았다.

현재 영화 ‘봉천9동’은 한창 편집 중이다. 영화 편집이 마무리 되면 장애인이나 인권 등 국제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장애인 스스로 만든 영화를 당당히 국제 무대에 출품하는 데 이어, 내년에는 다른 주제로 또 한 편의 영화가 제작될 예정이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한 마디 말에 상처를 받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거리에서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 “장애인도 그런 거 할 줄 아냐?”라든지 “애드리브란 말 뜻은 아느냐?”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는 일반인도 있었다. 촌철살인이냐, 촌철활인이냐가 판가름 나는 순간이다.

그 와중에도 ‘봉천9동’의 감독인 조규준씨는 장애인들의 일상을 전하기 위한 영화 제작에 여념이 없었다. 장애인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열어 대하는 것은 물론, 적어도 말로 상처를 주는 몰상식한 행위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장애인들의 영화 제작에는 사회복지사들의 지원과 실제 영화감독이나 연기자들의 참여가 많은 도움이 됐다. 현재 인터넷방송국 로하스홈(http://www.lohashome.com/) 뉴스채널에서는 ‘봉천9동’을 제작한 장애인센터 ‘함께 사는 세상’의 현장 소식을 담은 뉴스를 방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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