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림삼의 살며 사랑하며… ‘고된 하루’
[칼럼]림삼의 살며 사랑하며… ‘고된 하루’
  • 시사매일
  • 승인 2016.06.0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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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일】"누군가 사소한 도움이라도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사소하게 지나쳐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

◇그 날 새벽 사과를 깎아 주셨을 때

일전 어느 간호사의 고백에 가슴이 저렸었다. 아마도 누구라도 거울을 보는 느낌을 지울 순 없었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고백이었다. - 저는 암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야간 근무를 하는 어느 날 새벽 5시,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습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 호출 벨 너머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환자에게 말 못할 급한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습니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된 입원 환자였습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간호사님, 미안한데 이것 좀 깎아 주세요.”라며 사과 한 개를 쓱 내미는 것입니다.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달라니... 큰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맥이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의 옆에선 그를 간호하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는 거잖아요?” “미안한데 이번만 부탁하니 깎아 줘요.”

한 마디를 더 하고 싶었지만,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사과를 깎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심지어 먹기 좋게 잘라달라고까지 하는 것입니다.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환자가 못마땅해서 저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대충 잘라 놓고 침대에 놓아두곤 발길을 돌렸습니다. 성의 없게 깎은 사과의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환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래도 전 아랑곳하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환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며칠 뒤 그의 아내가 수척해진 모습으로 저를 찾아 왔습니다. “간호사님... 사실 그 날 새벽 사과를 깎아 주셨을 때 저도 깨어 있었습니다.그 날이 저희 부부 결혼기념일이었는데, 아침에 남편이 선물이라며 깎은 사과를 저에게 주더군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 사과를 깎지 못해 간호사님께 부탁했던 거랍니다.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남편의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서 죄송한 마음이 너무나 컸지만, 모른 척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그 날 사과를 깎아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저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 새벽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 전부였던 그들의 고된 삶을 왜 들여다보지 못했던가? 한없이 인색했던 저 자신이 너무나 실망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제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날 수 있게 해줘서...” -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사소한 도움이라도 요청한다면 기꺼이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너무 사소하여 지나쳐버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누군가에게 사소한 일이 또 누군가에겐 가장 절박한 일일 수 있다는 것만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고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새삼 머리 속에 맴도는 이유다.

◇힘겨운 삶, 종종 넘어지곤 한다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어제를 살아내면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심어놓았었을까? 내일 우리에게 주어질 삶의 페이지에 우리는 어떤 의미를 준비하여 채워갈 것인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필자는 지금 이 순간에도 퍽이나 분주타. 답은 없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보헤미안의 여정이, 고달프게 이어지는 집시의 방랑 같아서 딴에는 무척 슬프다. 그래서 버겁다.

매일 비가 오는 건 아니듯 언제나 슬픔이란 없고, 언제나 괴로움이란 없고, 언제나 힘듦이란 없다고 한다. 어차피 힘겨운 삶 속에서 우리는 종종 넘어지곤 한다. 하지만 곁에서 지켜봐주는 가족과, 멀리서 응원을 보내는 수많은 마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된다.

‘헬렌 켈러’는 말한다.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로도 가득하다.”
- 어머니의 얼굴이 항상 밝지는 못합니다. 허리 병에 골다공증, 목 디스크까지... 이제는 저보다 더 보살핌이 필요한 어머니지만 이 못난 아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돌봄이 필요합니다. 어머니도 지치실 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 “왜 그렇게 힘든 데도 계속 사냐?” 라고 묻는다면 “어머니의 사랑이 날 살게 했다.” 라고 답할 것입니다. ‘머리 감고 싶어요, 일으켜 주세요, 등을 긁어주세요.’ 항상 바라는 것 많은 아들과 옥신각신하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활짝 웃으며 내 얼굴을 보듬는 어머니.

가끔은 포기하고 싶고, 화가 나기도 하고, 슬픔에 머리끝까지 잠겨 놓아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종종 찾아오지만, 언제나 내 손을 붙잡아준 것은 어머니, 바로 당신입니다. 뭐가 그리 좋다고 이 자신을 세상에 내놓으셨나요. 저는 사람답게 살려고 웃고 또 웃었습니다. 어머니 가슴에 미소를 띠며 떠나는 것 그 일념으로 참았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제가 없고 이해도 못 한 눈시울만 있습니다. - 박시인의 ‘어머니’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내친 김에 한 편만 더 보자. 시 ‘사모곡’에 들어있는 내용이다. - 두 발로 걷는 것, 혼자 머리를 감는 것, 앉아서 음식을 먹는 것...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이 제게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저는 돌입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딱딱한 돌처럼 굳어버린 몸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집니다. 이 끔찍한 병의 원인을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온종일 두 평 남짓한 방에 누워 지낸 지도 26년. 분노, 슬픔, 괴로움, 기대, 좌절, 소망. 고된 하루는 시가 되어 세상으로 날아갑니다.

나도 함께 날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그러나 저에게는 든든한 기둥이 있습니다. 바로 제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쓴 시만큼은 돋보기를 쓰면서도 읽고 또 읽으며 기뻐하십니다. “우리 아들이 시인이 되었다.”고 동네방네 자랑하시는 것은 물론이죠. 그런 어머니와 함께 겪은 일상들은 또다시 보석처럼 영롱한 시어가 되어 반짝입니다. 어머니의 얼굴도 항상 반짝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당신은 내게 늘 바람막이가 되고 나는 늘 당신의 모진 바람만 되는 것을 -

절절한 육신으로 절규한 비명같은 이 시, 하늘에 닿을 듯 깊은 떨림의 영혼으로 빚은 이 시, 이런 시에 시평을 달아볼 용기 있는 문인 있다면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사용한 시어가 어떻고, 내용이 어떻고, 주저리 주저리 감상평을 거론해볼 독자 있다면 한 번 만나보고 싶다. 무슨 댓글이 필요하고, 어떤 첨언이 필요할까? 모두 다 쓸 데 없는 췌언인 것을. 그저 하늘을 향해 되도 않는 원망을 한 바가지 쏟아붓고 싶다. 종주먹 들이대며 세상 향해 함성이라도 목청껏 내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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