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힘겹고 벅찬 선구자의 길…'신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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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일】그들은 모두 나와 같이 귀한사람들... 늙어가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자

◇미개척, 모험심 요구하는 새길

신작로(新作路)’라는 단어는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대부분의 국도나 지방도가 비포장도로였다. 더구나 강원도 시골에서는 포장도로를 찾아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당시에는 그저 대도시에나 가야 그 근처 일원에 깔려있는 포장도로에 마냥 신기해 했던 기억이다. 그 때 우리는 새로 난 길, 쭉 뻗은 길을 신작로라고 불렀다.

그 신작로를 따라 걷노라면 먼지도 전혀 안 나고, 길 가운데 잔 돌이 없어서 발바닥이 하나도 안 아파 무척 신기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감동에 겨워,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걸어가면서 길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곁에 본래부터 놓여져 있던 꾸불꾸불한 옛 길을 건너다 보면서 비교를 하곤 했다. 나쁜 길에 만족하지 말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편하고 보기가 좋다는 걸 깨우친 스스로의 공부였다.

어린 마음에 느꼈던 그 강렬한 추억이 훗날 삶의 무수한 길을 걸어오면서, 스스로에게 신작로를 내야 한다는 사명감과 강박관념으로까지 이어진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남들이 걸어간 길을 따라 답습하기보다는 미개척의 길, 모험심을 요구하는 새 길로 필자의 삶을 이끌었던 것 같다. 그것이 결국은 개인적인 삶을, 변화무쌍하고 거치른 황야를 헤매는 보헤미안의 삶으로 변모시키는 험난한 지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소위 신작로라는 길은 경우에 따라서 잘 닦여진 편한 길이 아니라, 힘겹고 벅찬 선구자의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한 평생이 걸린다는 지혜는, 결국 필자의 한 평생을 들여서야 마침내 깨닫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니 정작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있을 리도 없음이다. 그리고 이 진실을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필자처럼 살지 말라고 당부하고도 싶지만, 정작 그 누군가가 필자의 말을 믿어줄 지는 의문이다.

어차피 인간의 삶이란 그런 거니까, 삶의 굴레는 그렇게 뻔한 진리를 머금고 있지만, 아무도 직접 겪기 이전에는 자신의 일로 인정하지 않는 우매한 아집으로, 세파를 헤치고 나아가는 항해가 바로 삶의 본질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면 된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의 삶의 색깔이 어떻든 그게 중요하진 않다. 당장 놓여진 자신의 일상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의 엮음이, 조금이라도 덜 후회스럽기 위한 몸부림이 요구되는 시점이거늘, 어찌 한 눈을 팔고 있단 말인가?

◇어른을 설득시키려 하지 말자

새로운 봄이거늘 이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마음을 다잡아 살아가야 할까? 가장 먼저 나를 사랑하도록 해보자. 자기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데 다른 누가 나를 사랑하겠는가?

그런 이후에 다음 단계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자. 그들은 모두 나와 같이 귀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나면 다음에는 나 보다 나이 많은 어른을 공경하자.

누구나 머지않아 우주의 법칙에 따라 차례로 멸할텐데, 늙어가는 것이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 누구도 늙어지고 사라지는 과정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러니 매사에 순응하되, 나이 든 어른을 설득시키려 하지는 말자. 가능하면 변화하는 질서를 잘 설명하고 이해를 시키자. 끝내 이해를 못한다면 그거야 말로 그 어른의 깨달음의 부족일 것이다.

벼도 익으면 고개를 숙이지만, 그럼에도 살아온 삶이 쉽게 바뀌어지지는 않을테니까, 억지로 변화시키려 들지는 말자. 비단 그것이 마치 검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는 어리석음일지라도 그건 당사자의 책임이다. 그저 마음을 열고 소통하면 그걸로 된다.

다른 사람이 좀 부족하거나 몸이 아프다 하더라도 무시하거나 혐오하지도 말자. 우리도 어느날 불의의 사고로 불구가 되거나 예기치 못하게 장애가 올 수 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행동을 일삼다가 우리가, 우리 가족이 언젠가 그와 같은 일을 겪게 된다면 그 때는 어찌할 것인가? 세상사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그 기회와 위기가 주어진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이웃이 가진 것이 없다고 무시하지도 말자. 혹 아는가?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어느날 그 사람이 로또에 당첨될지도, 그래서 팔자가 순식간에 바뀔지도 모르는 거다. 우리는 누구든지 공평하게 올 때도 빈손이요, 갈 때도 빈손인 것을 자각하자.

또한 위만 바라보며 살지도 말자. 가진 것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편리할 뿐이다. 그리고 그 댓가는 빨리 멸한다는 거다. 그곳에는 욕심과 오만, 권위, 이기심만 가득하니까 말이다. 웃음과 기쁨, 성취는 낮은 데(없음에)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가능하다면 성내지도 말자

살면서 가능하다면 성내지도 말자. 웃고 살기에도 부족한 삶이다. 백세인생이라니까 잘 해야 100년은 살까? 그러니 미운 사람을 만들지 말자. 혹여 무의식 중에라도 그런 사람을 보게 되면 자신의 마음만 괴로울테니까 말이다.

지금 찾아와준 이 봄에 우리가 꼭 지니고 가야할 것은 ‘건강한 육신’, ‘사랑하는 마음’, ‘넘치는 웃음’, ‘희망찬 내일’, ‘정겨운 가족(이웃)’, 그리고 ‘소중한 꿈’이다.

살펴보니 지금 이 순간 우리는 가진 것이 아주 많은 사람들이다. 창가에 비추는 따스한 태양, 바로 우리의 것이다. 산야에 싹트는 푸르른 초목, 우리의 것이다. 저 푸른 창공도 우리의 것이다. 푸른 물결, 춤추는 바다도 우리의 것이다.

숲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합창도 우리의 것이다.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숨 쉬는 공기도 우리의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은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와, 느낄 수 있는 마음뿐이면 된다.

우리가 이런 것을 소유하면서 지불해야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런 것을 누리면서 지켜야할 의무는 있다. 우리 삶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것이니 훗날 돌려줘야 하겠다. 우리는 마땅히 이것들을 자녀에게 물려줘야 되는 거다.

그런 착한 마음을, 나누면서 공유하고자 하는 바람직한 심성을 지닌 우리의 2016년 봄은, 밝고 순수한 세상과 아름다운 누리를 일구어가는 우리 모두의 찬란한 봄의 이름으로 빛난다.

언 땅을 녹이고, 언 마음을 녹이고, 아직도 남아있는 차가운 겨울을 단숨에 떨쳐내고, 정녕 환희로운 꽃잎같은 봄 하나 만들어 피워내야겠다. 마음에 푸르른 숲 만들며 봄바람처럼 살아가야겠다.

꿈결같은 그 숲길 나란히 걸으며 지저귀는 새소리를 들어야겠다. 온통 물들은 봄을 진실한 가슴으로 살아가야겠다. 봄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가없는 삶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누구라도 좋으니 한 사람, 손 잡고 함께 길 걸었으면 좋겠다. 봄이 있는 한 언제까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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