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전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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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은 2007년도 기획특별전 ‘요시노가리, 일본 속의 고대 한국’을 일본 사가현 교육위원회와 공동으로 10월 16일부터 12월 2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특별전은 우리나라의 초기철기와 원삼국시대의 문화와, 요시노가리 유적을 중심으로 한국과 일본의 야요이시대 문화를 서로 비교하는 최초의 전시로, 당시 한일 양국 문화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를 종합적으로 조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품은 기원전 5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에 걸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유물 600여점이며, 이 가운데에는 요시노가리 유적에서 출토된 세형동검을 비롯한 일본의 국가중요문화재 20여점이 포함되어 있다.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본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마을 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요시노가리 유적은 이 시기 한반도의 농경문화가 일본에 전래되어 일본 고대사회 문화의 발전에 미친 영향을 밝혀주고 있다.

이 특별전에는 일본 야요이 문화의 특징을 보여주는 독무덤, 토기, 꺽창, 본뜬거울 외에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인 덧띠토기, 청동기 거푸집, 한국식동검 등이 비교·전시된다. 또한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식 토기와 청동기도 전시되어 당시 활발했던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상을 조감할 수 있다. 이와 함께 한반도에서 유입된 벼농사와 농경기술을 기반으로 출발했던 초기의 작은 요시노가리 마을이, 야요이시대 후기(기원후 1세기~기원후 3세기)에 이르러 대규모의 주거 공간과 마을 공동의 제사 공간, 생산물 보관창고와 시장 등을 갖춘 도시 또는 초기국가의 중심 마을로 발전해가는 과정도 함께 엿볼 수 있다.

전시는 크게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 야요이 마을의 탄생,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 한반도 출토 일본유물과 한일 문화 교류 등으로 구성된다.

제1부 ‘한반도의 농경문화와 일본 전파’에서는 진주 대평리, 부여 송국리 등 벼농사 관련 유적을 통해 한반도에서의 벼농사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나아가 일본 야요이시대 초기의 벼농사 유적인 나바다케菜畑 유적 출토품을 전시하여 일본의 야요이시대 벼농사 문화가 한반도 벼농사의 일본 전파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제2부 ‘야요이 마을의 탄생’에서는 요시노가리 유적의 초기 출토품들을 통해 요시노가리 유적의 탄생이 한반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며, 이와 함께 현재 복원된 요시노가리 유적을 영상으로 소개하여 2,000년 전의 요시노가리 유적의 모습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제3부 ‘고대 한반도와 야요이 마을의 생활’에서는 한국식동검, 다뉴세문경, 점토대토기 등 한반도와의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들을 한반도 출토 관련 유물과 비교 전시하여 당시 문화교류의 양상이 어떠하였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출토 일본 유물과 한일 문화 교류’에서는 한반도에서 출토된 일본 야요이시대 유물을 통해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가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이번 특별전 기간 중에는 <곡옥 만들기>와 <토기 복원하기> 등 당시 한반도와 일본 사람들의 생활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행사와, 전시를 관람하면서 문제를 풀어보는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다. 또한 11월 10일에는 한일 양국의 관련 학자들이 참여하여 당시의 문화 교류상을 되짚어보는 국제학술심포지엄도 예정되어 있다.

2,000년 전, 바다를 사이에 두고 교류했던 한일 양국의 문물을 한 자리에 모은 이 특별전시를 통하여 고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의 큰 흐름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시는 2008년 1월 1일부터 2월 11일까지 일본 사가현립미술관에 순회 전시된다.

1. 요시노가리 유적 복원 전경

요시노가리吉野ケ里유적은 일본 북부 규슈의 사가현에 위치한 일본 최대의 고대 마을유적으로, 1986년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 발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규모와 발굴성과는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유적에서는 일본 야요이시대彌生時代(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문화의 특징과 한반도와의 교류를 증명하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은 야요이시대 전기에는 소규모였다가 야요이시대 후기가 되면 넓이 40만㎡가 넘는 대규모의 마을로 발전하게 된다. 이 마을에는 지배자의 생활 공간 및 마을의 제사 공간, 수확물 등을 보관하고 주변마을 사람들과 교역交易을 하였던 시장 겸 창고 구역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규모로 보아 야요이후기의 요시노가리 유적은 일종의 도시都市 또는 초기 국가의 중심 마을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2. 한국식동검韓國式銅劍, 길이 44.8cm(오른쪽), 일본중요문화재, 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일본 요시노가리 유적의 분구묘에서 출토된 한국식동검이다. 한국식동검은 청동 혹은 백동으로 만든 단검으로, 검몸劍身의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하며 양날이 직선적이어서 세형동검細形銅劍이라고도 한다.

한국식동검은 기원전 4세기 충청도지역에서 처음 나타나는데, 종종 한국식동검문화라고 불리는 특징적인의 유물과 함께 출토된다. 처음에는 부채날도끼扇形銅斧·거친무늬거울多紐組文鏡등과 함께 출토되지만 이후 꺽창銅戈 ·네모도끼銅斧·잔무늬거울多紐細文鏡·각종 청동방울靑銅鈴 등이 새롭게 나타난다.

이러한 한국식동검은 일본 규슈 북부지역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일본 야요이시대 유적에서 발견되는 한국식동검·투겁창·꺽창·거울·방울·옥·덧띠토기·검은간토기 등의 유물을 통해 알 수 있다. 야요이시대 규슈 북부에서 유력한 집단 중의 하나인 요시노가리 유적의 거대한 분구묘에서도 한국식동검과 유리대롱옥이 출토되어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얘기해 주고 있다.

3. 덧띠토기粘土帶土器 높이 18.7(좌)·23.4cm, 아산 남성리(좌)·사가현 요시노가리(吉野ケ里)

아가리에 점토띠를 덧붙여 만든 토기이다. 덧띠토기는 한강 하류에서 금강 하류에 이르는 중서부 해안지역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주변지역으로 전해지는데, 영·호남 등 한반도 남부지방뿐만 아니라 규슈를 중심으로 한 일본열도에서도 비슷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요시노가리 유적에서는 덧띠토기 외에 한반도계 무문토기도 함께 출토되어 당시의 교류상을 대변해 주고 있다.

4. 잔무늬거울多紐細文鏡, 지름 16.2(좌)·10.5cm, 횡성 강림리(좌)·사가현 혼손고모리(本村籠)

잔무늬거울은 한국식동검문화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청동기문화를 상징한다. 원형의 거울 뒷면 중앙에 두 개 또는 세 개의 고리가 달려 있고, 나머지 공간에 정교한 집선문集線文을 새긴 것이 특징이다.

잔무늬거울은 단순히 거울 본래의 기능을 넘어 신성한 권위를 상징하였다. 특히, 거울과 함께 출토되는 청동방울도 제사와 같은 의식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였기 때문에 이 유물들이 함께 출토된 무덤의 주인공은 당시 최고 지배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반도의 잔무늬거울은 일본에도 영향을 미쳐, 규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모두 10여점이 발견되었다. 이들은 주로 독무덤과 같은 지배계급의 무덤과 제사유적에서 발견된 점에 비추어 볼 때 덧띠토기문화를 지닌 사람들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여겨진다.

5. 청동투겁창中細形銅鉾, 83.9cm, 일본중요문화재, 사가현 겐미다니(檢見谷)

겐미다니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투겁창이다. 창의 표면은 대부분 구분연마區分硏磨하였는데, 구분연마는 창의 몸통을 등날에서 약 70°방향으로 오른쪽과 왼쪽이 비스듬하게 대칭되도록 2cm 정도의 너비로 갈아내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빛을 난반사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청동투겁창은 실제 전투에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길어 제사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제사용의 청동기는 한국으로 전해지는데, 주로 장례의례葬禮儀禮에 사용하기 위해서 정치적 지배자들이 의도적으로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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