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자랑 멋자랑>-장어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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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매일] 뱀장어(민물장어)는 민물에서 5~12년간 살다가 태평양 한복판 심해에서 알을 낳고 죽는다.

알에서 깬 새끼들은 그 어미가 살던 민물로 헤엄쳐 와 산다. 우리가 먹는 뱀장어는 민물에 살고 있을 때의 뱀장어이다. 대부분 양식인데, 어린 실뱀장어일 때 바다에서 잡아 민물에서 키운 것이다. 0.2그램 정도의 실뱀장어를 8개월간 키우면 250그램에 이르고, 이를 우리가 먹는다.

 

장어를 손질할 때 칼이 장어의 뼈를 건드리면 핏줄이 터져 살에 핏물이 밴다. 핏물이 밴 장어는 잡내를 낸다. 또 핏물이 배었다고 물에 씻으면 장어가 불판에 들어붙게 된다. 뱀장어는 잡자마자 불에 구우면 좋지 않다. 조직감이 딱딱해지고 기름 맛은 겉돌게 된다. 서너 시간은 숙성해 장어 맛이 차분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숙성하면 살과 껍질이 분리되지도 않는다.

뱀장어는 기름이 많다. 이를 숯불에 구우면 기름이 숯불 위로 떨어져 연기를 피운다. 기름이 타는 연기가 뱀장어에 배는 것이다. 이 연기가 훈연 향을 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과다한 연기로 인해 장어의 맛을 상하게 한다. 이는 숯의 종류와 관계없다. 기름 타는 냄새를 피하기 위해서는 애벌구이를 잘하여야 한다. 복사열이 강한 스토브로 기름을 충분히 제거하는 애벌구이를 한 후 숯불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숯불은 한숨을 죽인 숯불이어야 한다. 벌겋게 살아 있는 숯불은 장어를 너무 익혀 살을 뻣뻣하게 만든다. 장어집에서 까맣게 장어를 태우고 있는 손님들을 볼 때면 나도 속이 까맣게 탄다. 이 맛난 장어를 왜 그리 무신경하게 태워서 먹는지 알 수가 없다. 이를 말리지 않는 장어집 주인들에게도 큰 문제가 있다.

 

 장어집 주인들의 행태 중에 가장 나쁜 것은 생장어 그대로 내주면서 ‘셀프’로 구워 먹으라고 하는 경우이다. 장어를 어떻게 구워야 하는지 잘 아는 손님은 없다. 또 나 같은 손님이 있다손치더라도 내놓는 불이 맛있는 장어를 구울 조건에 미치지 못하니 장어는 엉망이 되고 만다. 장어구이를 ‘셀프’로 낸다는 것은 스시집에서 밥과 촛물, 해산물 따위를 주고 직접 스시를 쥐어 먹으라는 것과 같다.

장어는 클수록 살이 탄탄하여 씹는 맛이 있고 작은 것은 살이 여리다. 너무 큰 것은 질길 수 있다. 1킬로그램에 2~3마리 짜리가 맛이 가장 좋다. 장어는 기름이 많아 소금만 뿌려 구우면 기름 향이 고기 맛을 지배하고, 장어의 진미를 못 느낄 수 있다. 애벌구이한 장어를 양념 발라 굽는 것이 장어 맛을 더 돋운다.

수도권에서 장어구이 잘하는 집으로는 경기 고양시 일산 홀트복지관 앞 ‘장어 장가가는 날’(031-924-8802)이 괜찮다. ‘장어 장가가는 날’에서는 ‘황금숯불’이라는 신개발 숯을 쓰는데 원적외선이 강하여 장어가 마르지 않고 육즙을 잘 잡아준다.

<맛 칼럼리스트/황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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