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임명 추천해 달라며 거액 주고받은 승려들 징역형 확정

물욕에 눈 먼 승려들…판사들이 꾸짖고 훈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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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 실천한 법정스님과 같이 세속인에게 깨달음을 일깨워줘야 할 승려들이 세속의 물욕에 눈이 멀어 주지 추천권을 빌미로 거액을 주고받았다가 법원으로부터 준엄한 꾸짖음과 훈계를 받았다.

대한불교조계종 모 교구 본사(本寺) 유명사찰 주지인 A(61)씨는 2008년 2월 승려 B(53)씨로부터, 또 3월에는 승려 C(38)씨로부터 말사(末寺, 본사 관리를 받는 작은 절) 주지로 임명해 달라는 청탁을 받고 모두 8000만 원을 받았다. 본사 주지는 말사 주지의 임명 추천권을 갖고 있어 가능했다.

결국 A씨는 배임수재 혐의로, B씨와 C씨는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과 항소심 재판부는 이들 승려에게 호되게 질타하며 일갈했다.

◆ 1심 “종단과 신도들 기대와 신뢰 배반”

먼저 1심인 대전지법 공주지원 형사1단독 이창경 판사는 지난해 10월 A씨에게 징역 1년과 추징금 8000만 원을 선고했다. 또 B씨와 C씨에게는 각각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과 사회봉사명령 80시간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A씨는 이 사건 이전에도 본사 주지로서 말사 주지 추천권을 이용해 부정한 금품을 받은 범죄로 무거운 형사처벌을 받고 주지 직을 물러난 이후 치러진 주지 선거에서 당선돼 주지로 취임하게 됐으면서도, 종단과 신도들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하고 또다시 직위를 이용해 말사 주지 추천 대가로 적지 않은 금품을 받았으므로 굳이 성직자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고 죄책이 무겁다”고 밝혔다.

이어 “더구나 피고인은 종단에서 ‘공권정지 3년’의 징계가 확정됐음에도 참회하기는커녕 오히려 종단의 징계를 비난하고, 법정에서조차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자신과 갈등을 빚은 스님들이 주축이 된 사찰 내 기존 세력들이 무고하고 있다는 억지주장을 통해 타인에게 책임을 돌려 죄책을 모면하거나 경감 받으려고 시도하는 등 개전의 정이 전혀 없어 엄벌이 불가피해 실형에 처한다”고 판시했다.

이 판사는 또 A씨에게 인사 청탁과 함께 돈을 건넨 B씨와 C씨에도 꾸짖었다. 이 판사는 “피고인들이 비록 A씨의 요구에 따라 금품을 제공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성직자의 신분으로 말사 주지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적지 않은 부정한 금품을 제공한 것은 전 주지 사건으로 홍역을 치르고 새 주지를 뽑은 종단과 신도들의 기대와 신뢰를 배반한 중대 범죄로서 비난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또 “설령 피고인들이 종단 내 승적을 박탈당하는 불이익을 입게 될 가능성이 있더라도 징역형으로 처벌하는 것이 죄책에 합당하다”며 “다만 자신들의 처신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종단 내 징계 때부터 범행을 자백해 스스로 진실을 밝혔으며, 이미 종단 징계로 말사 주지 직을 상실한 점 등을 참작해 집행유예를 선고하되, 봉사활동을 통해 종단과 지역사회에 끼친 누를 씻고 지은 죄 값을 치를 수 있도록 사회봉사를 명한다”고 훈계했다.

◆ 항소심 “법희식과 선열식 아닌 황금식과 뇌물식” 일갈

그러자 이들은 “형량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며 항소했고, 대전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김재환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A씨가 받은 돈을 공탁한 점을 감안해 징역 8월로 2개월 감형했다. 나머지 2명은 1심 형량을 유지했다.

하지만 불교경전을 인용을 인용하며 준엄하게 꾸짖었다. 재판부는 먼저 묘법연화경에 있는 ‘법희와 선열로 음식을 삼아 다시 다른 생각이 전혀 없으며 여인은 원래부터 있지 않으니 한 가지 악한 길도 없다(法喜禪悅食 更無餘食想 無有諸女人 亦無諸惡道)’는 구절을 꺼냈다.

이와 함께 가족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대해 유마힐거사가 “‘법희를 아내로 삼고 자비를 딸로 삼고 성실을 아들로 삼는다’고 하면서 이러한 것들이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고 답했다는 유마힐소설경 불도품 구절을 언급했다.

또 “산에 사니 청빈하지 않을 일이 없어, 물욕은 다 없어지고 단지 몸 하나 뿐이네. 법희를 아내로 삼으니 참으로 좋아 부처님 말씀이 다 허망한 것 같지만 이 말만은 참말이네”라고 읊은 다산 정약용의 송풍루잡시 구절도 인용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법희식(法喜食)과 선열식(禪悅食)이 아닌 황금식(黃金食), 뇌물식(賂物食)을 추구함으로써 스스로 종교인인 자신들의 권위를 훼손함으로써, 불가에 세속의 심판을 자초해 버렸는데도, 이 사건은 불교계 내부의 일이라는 등 궁색한 변명거리만을 찾고 있다”고 질타했다.

법희식은 불법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닦아 선근을 자라게 하는 것을 음식에 비유한 말이고, 선열식은 선정(禪定)의 기쁨으로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하고 지혜로운 생명을 얻는 일을 말한다.

또 “이미 전임자들이 똑같은 잘못으로 세속의 심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피고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사욕에 눈이 멀어 다시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호되게 꾸짖었다.

재판부는 “이제 와서 피고인들이 반성을 되뇌고 있지만, 그렇다 하여 피고인들이 당초 저지른 범죄의 죄책이나 비난가능성이 저감된다고 할 수도 없고, 원심이 선고한 형이 특별히 부당하다고도 할 수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사건은 A씨와 C씨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피고인 A씨에게 배심수재의 공소사실을 유죄로 판단한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다”며 징역 8월에 추징금 80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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