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ㆍ2심은 무죄→대법원은 파기환송 등 5곳 재판부 거처 최종 유죄

건강검진 여학생 성추행 공방...가슴 만진 교사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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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을 해준다는 명목으로 초등학교 여학생들의 가슴 등을 만져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1ㆍ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던 목사이자 기간제 교사가 5곳의 재판부를 거치는 법정공방 끝에 결국 유죄가 최종 확정됐다.

여고 교사로 재직하다 1988년 목사 안수를 받고 서울 강서구에 S교회를 창립해 담임목사로 활동하던 L(당시 58세)씨는 2007년 9월부터 경기도 고양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음악과 영어 수업을 담당했다.

그런데 L씨는 그해 10월 학교 연구실에서 5학년인 A(12ㆍ여)양에게 건강검진을 해준다며 책상 위에 눕게 한 다음 상의 안으로 손을 넣어 가슴과 배를 만졌고, 11월에도 3학년 B(10ㆍ여)양에게 맥박을 짚어준다며 가슴과 옆구리를 만지는 등 3명의 학생들을 상대로 8회에 걸쳐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 1심 “신체접촉 당시 추행의 범의를 품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

1심인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오연정 부장판사)는 2008년 3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L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여학생들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의 행위는 다소 부적절한 신체적 접촉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나 학생들에게 신체접촉을 한 장소는 다른 학생들도 함께 있었던 연구실이거나 교실인 점, 피고인이 비록 의료자격증은 없지만 수지침과 상담치료에 관심이 많아 평소 학생들에게 진맥이나 건강검진을 해왔고, 학생들이 호기심으로 진맥 등을 요구해 피고인이 이에 응해 신체접촉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교사생활을 하거나 목회 활동을 하면서 추행으로 형사처벌 받은 전력이 없는 점에 비춰 보면, 피고인이 신체 접촉할 당시 추행의 범의를 품고 있었다고 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고인의 행위가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 항소심 “성적으로 민감한 신체부위를 접촉한 것 아니다”

그러자 검사는 “피고인이 교사의 지위에서 목회 경력이 있다는 점을 이용해 초등학교 여학생에 대해 건강검진을 이유로 교묘하게 지능적으로 추행한 사실이 인정됨에도 무죄를 선고한 것은 잘못”이라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조병현 부장판사)는 지난해 3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초등학교 여생들이라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면서도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1심 무죄 판결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A양이 호기심에서 자진해 피고인에게 진맥을 부탁하기 위해 계속해서 친구들을 데리고 연구실로 찾아간 점, 피고인이 정식으로 수지침을 배워 교회 신도 등에게 건강검진을 해왔고, 양호교사가 없어 평소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에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는 학생들에게 진맥을 해주는 등 건강관리에 많은 관심을 보여 왔던 점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게다가 연구실은 교무실과 가깝고 복도에서 들여다 볼 수 있으며 교사들의 개인사물함이 있어 공개된 장소인 점, A양의 건강검진 차원에서 배와 가슴부위를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손바닥으로 압박한 것 외에 달리 성적으로 민감한 신체부위를 접촉한 것도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양의 어머니도 피고인의 건강검진 얘기를 듣고 처음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행위는 객관적으로 일반인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추행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설명했다.

◆ 대법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 일으켜…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해”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3부(주심 안대희 대법관)는 지난해 9월 L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피해자 3명 중 A양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유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가슴을 만질 때 A양이 싫다는 얘기도 했고,A양과 함께 갔던 다른 여학생은 피고인이 가슴을 만질 때 황당해 하며 적극적으로 싫다는 표현을 했고, 또다른 여학생은 성폭력을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적극적으로 유죄 판단의 근거로 해석했다.

재판부는 “비록 피해자가 호기심에서 먼저 찾아갔고 함께 간 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한 행위여서 성욕을 자극ㆍ흥분시키려는 목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행위는 일반적으로 평균적인 사람에게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밝혔다.

또 “그로 인해 정신적ㆍ육체적으로 미숙한 피해자의 심리적 성장 및 성적 정체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어 ‘추행’에 해당한다”며 “그럼에도 추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로 판단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이 사건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제4형사부(재판장 김창석 부장판사)는 지난해 12월 대법원의 유죄 취지에 따라 A양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인정해 L씨에게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자 이번엔 L씨가 상고했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A양에 대한 성추행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로써 L씨는 5곳의 재판부를 거친 끝에 최종 유죄가 선고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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