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위험성 알면서 고수익 노리고 투자 사기 피해 아냐”

사채업자에게 투자 '쪽박'...'사기죄' 성립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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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높은 수익을 노리고 투자했다가 돈을 떼였다면, 투자자는 사기를 당한 것으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사채업자에게 사기죄를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 강남에 P투자업체를 설립한 A(45)씨는 대표이사를, B(46)씨는 감사를 맡았다. 그런데 B씨는 2004년 2월 Y씨에게 “A씨는 고액자산가이고 투자의 귀재로서 부동산 투자와 동대문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한 사채업 등을 통해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리는 대단한 사람이다. 투자하면 매월 5%의 이자를 주고 투자원금은 반환요청 시 1개월 이내에 돌려주겠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2003년 8월 설립한 P투자업체는 투자금 유치만을 위해 형식적으로 설립됐을 뿐, 영업활동을 하지 않아 매출이나 실적이 전혀 없는 사실상 유령 회사였는데, 이에 속은 Y씨는 투자금 명목으로 42회에 걸쳐 19억 1500만원을 투자했다.

이후 Y씨는 A씨로부터 매월 5%의 이자를 지급받았으나, P투자업체는 새로운 투자자가 유치되지 않아 갈수록 약정된 고율의 수익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었고, 급기야 최대 투자자인 Y씨가 이들을 사기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P투자업체는 후순위 투자자들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을 이용해 기존의 투자자들에 대한 원리금을 순차적으로 상환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어, 결국 계속 새로운 투자자를 유치하지 못하면 원금과 수익금을 지급할 수 없는 구조였다.

◆ 1심 “투자업체 사기죄 아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김동완 판사는 지난해 4월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와 B씨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김 판사는 “피고인 A씨는 B씨에게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1%의 수익금 보장을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하고, B씨는 투자자들에게 5%의 수익금 보장을 조건으로 자금을 조달하게 한 사실을 고소인도 알고 있었다”며 “따라서 Y씨는 자신의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피고인들의 행위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자금을 조성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며, 피고인의 주장처럼 단순히 기망당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 항소심 “투자모집책은 사기에 해당”

이에 검사가 항소했고, 서울중앙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조용준 부장판사)는 지난해 9월 A씨에게는 1심과 같이 무죄를, B씨에게는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깨고 징역 1년6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B씨는 P투자업체가 새로운 투자자를 계속 유지하지 못하면 안정적으로 약정된 고율의 수익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정을 알면서도 Y씨를 기망해 장기간에 걸쳐 거액의 투자금을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B씨에게 유죄 판결했다.

◆ 대법 “사기죄로 판단한 원심은 잘못”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 제2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사기 혐의로 기소된 P투자업체 대표이사 A씨의 무죄를 확정하고, 또 B씨에게 유죄 판결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9일 밝혔다. (2009도10188)

재판부는 “Y씨는 투자자금을 댈 즈음 A씨와 P투자업체의 사업내용과 위험의 정도를 잘 알고 있었다고 봄이 맞고, 이 같은 전후사정을 종합하면 Y씨는 높은 수익을 노리고 그 위험성을 감수하면서 P투자업체에 자금을 댄 것으로 B씨가 Y씨를 기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A씨는 Y씨의 투자금에 대해 2004년 2월부터 이듬해 9월가지 약정된 이자를 지급했고, Y씨를 비롯한 여러 투자자가 반환을 요구한 원금에 대해 일부 반환하기도 한 사실에 사채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고율의 이자가 통용되고 있음을 고려하며, 비록 5~6%의 이자가 높기는 해도 처음부터 수익금을 지급할 능력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심은 B씨가 Y씨를 기망했다고 단정하고 유죄를 인정했으니, 이는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해 사실을 오인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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